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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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 원본 편집]

서쪽으로는 주나라푸치칸, 남쪽으로는 콰이, 동쪽으로는 대진공화국과 맞닿아 있는 입헌군주제의 가상국가이다. 세공프에 참여중인 국가이다.

행정 구역[편집 | 원본 편집]

의나라는 하나의 성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관할하는 고유한 행정 체계를 갖는다. 하나의 도성과, 7성이 있으며, 하나의 자치성이 섬들을 관할한다.

  • 의정도성
  • 의창성
  • 의래성
  • 의안성
  • 북의성
  • 남의성
  • 동의성
  • 계의성
  • 중의성
  • 소의자치성

역사[편집 | 원본 편집]

기원전 176년에 즉위하신 고 태조 태선왕에서부터 현재(2016년) 금상께 이르기까지 124명의 선왕이 승계하시면서 2192년간 지속되고 있다.

건국 이래로 수도 의정성은 공격을 받은 적은 있으나 함락되거나 소실된적이 단 한번도 없이 2200년 가까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러한 이유와 더불어 나라가 멸하지 않고 계속 유지되어왔기에 거의모든 기록들이 온전한 상태로 관리되어왔고, 국민들은 굉장한 애국심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고 태조 태선왕께서는 기원전 176년 우리땅으로 영역을 넓히고 강제점령하는 등 파죽지세로 우리의 얼을 유린하는 시나라에 대하여 그들을 격퇴하고 독립하시어 응연[1]에서 의나라를 선포했고, 백성들의 어려움 하나 하나에 귀를 기울이셨다. 우리 귀 왕가는 그 시작에서부터 의로웠던 것이다. 기원전 155년, 대연국 제 2대 선왕이신 정종 대선왕이 즉위하여 나라의 기초를 완성지으셨다. 1세기경 풍수지리적으로 훌륭한 정골[2]에 큰 성을 짓기로 하고, 머지않아 수도를 정골로 천도했다. 서쪽의 가락국과 동쪽의 위나라와 처음 수교를 맺었으나, 가락국과는 거대한 산맥에 의해 잦은 교류가 힘들었던 반면 위나라와는 편리하게 교류할 수 있었다. 남쪽의 세력은 스스로를 국가라 불렀지만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하였고 주변국에 수시로 약탈을 일삼았기 때문에 야만인과 같이 천하게 여기었다. 3세기경 당시 금상이셨던 고 시종 대선왕께서는 3개의 성을 각각 의정성, 의래성, 의안성으로 이름을 바꾼뒤 의창성과 함께 의나라를 대표하는 4성으로 분류하고 개발정책을 펼치셨다. (중략) 9세기경 예왕(예나라 왕)이 황제로 즉위하여 대예제국을 선포하였고, 예나라 제 2대 황제 살안제가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나라 여인을 황태후로 세우면서 예와의 사이는 우호적이게 되었다. 예나라와 친하게 지내다 자세히 보게된 예나라의 문화와 정서는 기존의 생각보다 더욱 친하게 와닿았으며, 10세기경 예나라를 황제로 인정하여 예나라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남쪽의 야만인들이 침략전쟁을 벌이는데 이것이 1차 의야지난이다. 11세기경 남쪽의 야만인과 또다시 전쟁이 시작되는데 이것이 2차 의야지난이다. 두 차례의 큰 전쟁으로 의나라는 4성중 하나인 의래성을 점령당하고 남쪽지방은 심하게 황폐해졌으나 이윽고 도착한 예나라의 원조로 빠른 시간내에 복구할수 있게 되었으며 둘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야만인들의 추가적인 침략을 효과적으로 막아주고자 예나라 직속 관할 군사기지가 의나라 남쪽 국경지대에 설치되었다. 12세기경 북쪽 강건너 땅을 점령하여 이곳에 의길성을 건설했다. 의길성은 이내 4성에 합류되어 의국 5성의 하나가 된다. 14세기경 복수의 칼날을 갈고 갈던 의나라는 마침내 무기를 들고 일어섰고, 야만국 이나라는 그들의 수도 비두쟌을 함락당하고 만다. 오랫동안 고통을 주었던 원흉의 고향을 풍비박산내면서 의나라는 황금기를 맞이했고, 당시 금상이셨던 고 전조 대선왕께서는 현재에도 가장 존경받는 군주중 하나로 기억된다. 16세기경 내란이 일어나 수도 의정궁이 공격받고 서대문이 화재로 전소되는 일이 벌어졌지만 그것으로 끝났다. 남동쪽 지방에 푸치칸이 북진에 북진을 계속해 국경이 맞닿게 되면서 전쟁을 준비하기도 했었으나, 양국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예제국은 새로이 황태후가 된 여인의 꾐에 넘어가 내부적으로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17세기경 대예제국이 신흥세력에 의해 급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당시 금상이셨던 고 예종 선왕께서는 12만 병력의 원군을 보냈지만, 원군이 대예제국 국경을 넘기 시작했을때 이미 대예제국은 되돌릴수 없을만큼 무너진 상태였다. 신흥세력은 괴이할 만큼의 속도로 대예제국에 승리를 거머쥐었는데 타고난 기마술과 화약무기 때문이였다. 북해 앞바다에 화산이 크게 폭발하여 인근 섬이 피해를 입었다. 18세기경 대예제국을 풍비박산낸 신흥세력은 국호를 주나라로 정하여 건국했으며, 대예제국 본토를 모두 점령했다. 의길성 부근으로 피난중이던 대예제국 황제 완력제주나라군에 포섭되어 참수되고 만다. 이렇게 대예제국 정실 황실은 멸하고 황제국으로서의 지위도 잃고 만다. 의길성과 그 주변지역 역시 주나라에게 점령당하고 만다. 당시 금왕이셨던 고 덕종 선왕께서는 오랫동안 이어온 의리를 베풀어, 예전에 전진기지로 관할권을 위임해준 지역의 모든 자치권을 예나라인에게 위임해주었다. 북해 앞바다에 일어난 화산 폭발은 새로운 섬을 만들고 휴화산이 되었고, 신산도라 이름지었다. 19세기경 주나라의나라에 침략전쟁을 일으켰지만, 주나라는 기본적으로 말의 민족이였기에 물과 친하지 않았다. 강을 낀 구역에서의 전투는 허무하리만큼 패전에 패전을 거듭했고, 의나라는 병력을 강이아닌 접경지역인 의래성 동쪽부근에 집중하여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다. 거듭 국토를 잃어가며 쇄퇘의 길을 걷고 있던 이나라는 왕조가 끊기고 만다.

20세기경 이나라는 멸망하고 콰이라는 신흥국가가 그 자리를 승계받았다.
  1. 응연, 지금의 의창성.
  2. 정골, 지금의 의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