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폴리스 자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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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폴리스 자치주/동주
State of Eastpolis/Востопо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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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개요
소속 국가
설립
행정구역
게르노프-강현 광역시 산하 12군3시
면적
36만 2350km²
인구
인구
약190만여명
인구밀도
약 1km²당 5.4명
상징
이스트폴리스 자치주목
소나무
이스트폴리스 자치주화
사과꽃
이스트폴리스 자치주조
마스코트
주의회,주법원,주행정집행청
주의회,주법원,주행정집행청 소재지
게르노프-강현 광역시
이스트폴리스 주지사
게르이히 '블라디미르' 안톤
기타
시간대
우편번호
지역번호


목차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네이션 연합국의 자치주중하나이며 네이션 연합국 최동단에 위치하여있다.

특징[편집 | 원본 편집]

네이션 연합국 가장 동쪽에 위치하였으며,중앙정부의 힘이 강하지 않은 네이션 연합국의 특징과 맞물려 상당히 높은수준의 자치를 하고있다.

두개의 민족[편집 | 원본 편집]

기존에 있던 게르노프-베르누이섬의 원주민은 1910년대 유입된 슬라브계 죄수였다. 좀더 구체적으로는,정치범이나 기타 잡범위주였으며 사실상 유배지로 쓰이머 관리되지 않았다. 이에 기회를 잡은 수감자들은 자신들만의 협력체를 만들어 생활해왔다. 그러던 어느날 '강현'제독이 이끄는 함대가 점고하려했으나 태풍때문에 반강제로 편입되었고,이시기에 이스트폴리스로 개칭하며,이스트폴리스 양대 민족인 슬라브계와 한민족계의 구분이 생겨났다. 또한 둘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범 슬라브당과 한민족당이 만들어졌으며,범 슬라브다은 슬라브당으로, 한민족당은 한당으로 이름을 개칭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지리및 기후[편집 | 원본 편집]

지리[편집 | 원본 편집]

네이션연합국의 7번째주로써 가장 멀리떨어져있다. 주섬인 '게르노프-베르누이'섬과 작은 '박철'도,'병존'도로 이루어져있다. 가장 큰검인 게르노프-베르누이섬의 경우엔 신의 축복을 받았다할만큼 완벽한 조건을 가진땅이였지만 진선공화국은 이를 알지지못하고유배지로만 썼다. 그러나 이스트폴리스의 네이션 편입이후 각광받는 개발대상지로 떠오르고있으며 현재까지 확인된 유정만 190여군데이며 매장량은 추산이 힘들지경이라고 한다.

그러나 작은두개의섬, 박철도와 병존도는 그런 자원의 축복에서 조금 빗겨나고 만곳이다. 그러나 두군데다 지리적특성을살려 병존도는 무역항으로서,박철도는 주 중심부근에 위치한 특성을살려 교통의 중심지로서 작동중이다. 그러나 박철도의 태풍기마다 끊기는 성박과 항공편의 문제로 교통거점으로서의 위상이 점점 작아지고있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이스트폴리스의 건국[편집 | 원본 편집]

본래 이스트폴리스의 본섬,'게르노프-베르누이'섬은 무인도였다. 1910년대 (정확한 시기는 알려져있지않으며,당시 탐험대가 작성한 리포트등은 소실되었거나 기밀처리되었다.) 진선공화국 소속 베르누이 탐험대의 이반 '알렉산드르'게르노프 준장이 이끄는 '베르누이'탐험대가 처음으로 이땅에 발을내딛었고, 탐험대장 게르노프 준장은 자신의 이름과 탐험대 이름을 따 게르노프-베르누이 라 섬이름을 붙이고, 태풍이 관측된 직후 진선공화국의 깃발을 세운뒤 귀국하였다. 그후 이땅은 죄수들을 특히 슬라브계 죄수들을 수용하는 노천감옥으로 사용되었고 마지막 죄수호송선이 떠난후,진선공화국은 여름마다 태풍이 몰아치는 이땅을 잊었다. 1920년대 게르노프-베르누이는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잊혀졌으며,사람들사이에서 전설처럼 떠도는 이름이 되었다. 한편 섬에 남은 죄수들은 스스로 마을을 일구고, 몇몇 책을 기반으로 기술을 아주 느리지만 기술적 발전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섬몇군데에선 유전이 발견되는 기적적인 일도 벌어졌다. 또한 이시기에 각국에서 정치적 사유나 경제적 사유로 자신의 고국을 떠나있던 난민 수십명이 게르노프-베르누이 섬에 상륙하게되었고 죄수마을과 조우하였지만 서로 싸우지만 않기로한뒤 각자 다른곳에 자리를 잡았다.

강현제독의 침입[편집 | 원본 편집]

1937년 8월,어느 국가의(끝까지 그들은 함구하여 어느나라출신인진 확인되지 않았다.)함대가 상륙하였고 예상치못한 원주민의 존재에 교전하기 시작하였다. 게르노프-베르누이섬 위원회란 이름으로 잠시 뭉친 주민들은 항복을 할지에대해 토론하기 시작하였지만 항복하지 않기로 결정한뒤 회의를 폐하였다.

1937년 11월, 주민들이 기다리던 폭풍이 몰아쳤으며 사전자료 없이 이곳을 찾아온 함대는 완전히 박살이 나고말았다. 게르노프-베르누이 섬 위원회는 그들을 주민으로 받아드리겠다고 밝혔고 함대의 제독이였던 강현 제독은 그들의 제안에 동의, 그들의 일부가 되었다.

건국[편집 | 원본 편집]

1937년 12월 함대의 병력이 모두 내렸으며, 그들중 기술자들은 따로 모아 기술지원 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38년 2월 강현 제독의 의견에 따라 법을 제정하였으며,국가의 틀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1938년 10월 이스트폴리스가 선포되고,정부와 국회를 만들었다. 1938년 11월 총선거가 치루어졌다. 1938년 12월 총선거결과에 따라 총리에 강현 제독이,국회의장에 블라디미르 드볘코프 범슬라브당 대표가 당선되었으며,첫 국회의원 42인을 선출하였다. 1940년 1월 블라디미르 드볘코프 범슬라브당 대표의 비리가 밝혀져 충격을 가하였으며 '드볘코프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다.

드볘코프 사건[편집 | 원본 편집]

1940년 2월, '드볘코프 사건'특검팀이 꾸러졌다. 1940년 3월 2일,'드볘토프 사건 특검팀'의 발표는 매우 충격적이였다. 현직 국회의원 42인중 30여명이 모 사에서 대규모의 '지원금'을 받았으며,그직후 '환경 파괴적 산업 금지법'의 폐지가 결정난 정황이 들어났다. 3월 7일. 국회의원 12인에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으며 그외 21인에대한 불구속 기소가 되었다. 3월 18일,드볘코프 국회의장이 자택에서 사망한채로 발견되었다. 특검팀은 이를 의도적인 범죄로 보고 수사에 들어갔더. 3월 28일,배후에 있는것이 이스트폴리스내 제일큰 기업이였던 AIKA 공업이라는것이 밝혀졌으며, AIKA 공업은 즉시 폐쇄되었다. 4월 2일 AIKA 공업의 산업을 배분하여 매각하는 절차에서 또한번 비리가 포착되었으며,특검 수사기한이 3개월 늘어났다. 4월 7일 해임된 33인의 국회의원을 대체하는 보궐선거가 치루어졌다. 4월 9일 새로운 국회의원 33인과 새로운 국회의장 케빈 니케가 임명되었다. 4월 12일 살아남은 11명의 국회의원중 3명의 비리가 확인되어 해임되었다. 4월 17일 이스트폴리스 국회에서 '재임기간중 계좌 전면동결및 경제활동금지' 법안,통칭 '드볘코프 법안'이 36대6으로 가결되었으며,가결즉시 효력이 발동되었다. AIKA 공업의 임원진 170여명의 구속과 국회의원 37인의 해임,그리고 국회의장 드볘코프의 사망으로 일명 '드볘코프 사건'은 막을 내렸다.

이스트폴리스 공화국[편집 | 원본 편집]

1945년2월 17일,임시정부의 해산을 선언한 케빈 니케 국회의장은 이스트폴리스 공화국을선언하였으며 새로운 총리와 국회의원을 뽑는 대선거를 실시하였다. 전례에따라 범슬라브당의 후보중 한명이였던 예르치나 보르네프 스탈리나그라드 시장이 당선되었으며, 인구에 비례하여 국회의원 84인을 선출하였다. 초대 국회의장으로는 강현 제독이 다시한번 권력에 올랐다.

첫번째 쿠데타시도[편집 | 원본 편집]

1948년 7월 1일 첫번째 쿠데타 시도가 일어났다. 정권에 불만을 가진국방부 장관 세드례니치 크라수니야 의 쿠데타군이 이스트폴리스광장을 가득 매웠으나 그누구보다 국가에 애정이 컸던 강현 국회의장이 만장일치로 세드례니치 크라수니야의 사형을 통과시키자 직접 점거당한 정부청사를 형해 국회의장 옥상에서 사격, 저격총으로 사살하였다. 반란군은 순식간에 와해되었으며 다시 이스트폴리스 방위군에 편성되었다. 또한 강현 국회의장은 직접 정부청사의 보강안을 제시하였는데,약 250여군데의 중요 보수지점이 나왔으며 그중에는 강현 국회의장이 쿠데타군 수뇌를 사살할때 깨진 유릿장의 방탄유리로의 교체또한 포함되어있었다.

1950년 부정선거사건[편집 | 원본 편집]

2대 총리를 뽑는 선거에서 한민족당 박연철 후보의 부정선거유세행위가 발각되어 즉각사퇴되었으며,임시수사팀이 수사에 착수하였다. 그결과 모든후보가 부정선거유세를 한것으로 밝혀져 예르치나 보르네프의 연임이 확정되으며,그로인해 국회의장인 강현 제독의 임기도 연장되었다.

2차 쿠데타 모의사건[편집 | 원본 편집]

1951년 8월 강현제독이 이끄는 국회감사팀의 조사도중 병사가 하나둘씩 사라짐을 깨닳고 추적한결과,부속도서의 독립을 요구하는 세력에의해 하나씩 귀순한것으로 밝혀졌다. 즉시 군병력를 투입한 강현 제독은 '개미새끼 하나 남기지 말아라'라는 말을 남겼고 박현도는 평탄화되었다.

3차 쿠데타 모의사건[편집 | 원본 편집]

1953년 9월, 국방부 육군사령관 김 병수가 자신휘하의 병력 300여명을 이끌고 1950년의 투표무효화의 철회를 요구하였으나 묵살되었으며,강현 제독 휘하 해병대를 동원하여 진압하였다. 또한 육군사형관 김 병수는 새로이 생긴 보르쿠타 제3교도소의 수감번호 0001로 수감되었다.

4차 쿠데타 모의사건[편집 | 원본 편집]

9월의 실패를 미처 듣지못한 남천포시의 일부 육군부대가 봉기하였으나 바로진압되었다.

이스트폴리스의 네이션 연합국 편입[편집 | 원본 편집]

1990년대,폐쇄주의적이였던 이스트폴리스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최대한 낮은 실업률을 추구하여 정책을 펴내갔지만,그래도 실업자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였다. 1992년 4월,그런 실업자중 하나였던 스볘들라냐 '보스토크'베례노프와 김 병철은 취업난의 심화에 이 더러운곳을 떠나겠다며 게르노프-강현 광역시에서부터 지금의 서포군 지역까지 도보로 횡단하였다. 지금의 서포군 해안지역에서 처음으로 네이션과 조우, 베례노프와 김 병철은 그들을 게르노프-강현광역시로 안내했다. 그들은 이스트폴리스의 합병에대해 의견을 제시하였으며,국회에서의 7개월 19일에 걸친 토론의 끝에 네이션과의 합병에 동의하였다. 그들을 안내한 스볘들라냐와 김 병철은 영웅으로 추대받으며 각각 어느섬에있는 군과 내륙지방에있는 농촌의 이름으로 남게되었다.

반발[편집 | 원본 편집]

그러나 네이션국과의 합병을 반대한 일부세력이 쿠데타를 시도하였으나 저지되었다. 이는 아직까지도 제 162차 쿠데타음모사건으로 남겨져있다.

게르노프-강현 광역시 공포의날 사건[편집 | 원본 편집]

의회장 피습사건[편집 | 원본 편집]

2004년 7월 15일 6시경 평상시처럼 출근중이던 9대 이스트폴리스 자치주 의회장 김 석금이 탑승한 한대자동차 G90 차량이 주의회광장앞 삼거리에서 좌회전중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차량을 피하기위해 갑작스럽게 핸들을 조작,숲에있는 나무에 추돌하였다. 첫번째 구조차량은 약 3분후 도착하였으나 테러범의 거센 총격에 철수하고 말았으며,사건발생 20분후 주방위대를 대동한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의회장 김 석금을 주립 종합병원으로 급히 이송하였다.

국제무역지구 폭탄테러사건[편집 | 원본 편집]

8시경 의회장 김 석금씨의 이송이 완료된후 김급소집된 주방위군과 예비군을 해산하던도중 국제무역지구의 가장높은 건물인 EP빌딩 28층과 71층에서 급작스럽게 폭발이 일어났다. 주지사는 긴급 계엄령을 발령하였으며 이스트폴리스 역사상 세번째로 네이션 연합국군이 게르노프-강현 광역시에 진입하였다. 이테러로 28층과 71층에서 모두82명이 희생되었으며 약 1천여명의 부상자를 발생시켰고 또한 29억달러 이상의 경제적 손실을 일으켰다.

주회의사당 돔 폭탄테러사건[편집 | 원본 편집]

주 의회의원의.대피가 완료된 8시 30분경,갑작스럽게 주회의사당의 주회의장으로 추정되는곳에서 폭발이 일어나 주회의사당 돔이 완전히 파손되고,경비 두명이 사망하였다.

강현광장 인질극[편집 | 원본 편집]

9시경,주의회의사당 앞 강현광장에서 톰슨기관단총등으로 무장한 8인의 인질범들이 급작스럽게 인질극을 벌였으며,EPOIL의 세계화정책에대한 반대의사를 표방하였으나 투입된 네이션군 저격수에의해 모두 사살당하였다.

주정부청사 폭탄테러 미수사건[편집 | 원본 편집]

9시반경, 긴급대피가 완료된 직후 긴급 점검에 들어간 경비팀에의해 TNT폭약 약 975kg이 발견되었으며,급히 타이머를 절단한후 EOD팀에 넘겨졌다.

국제무역지구 2차폭탄테러[편집 | 원본 편집]

14시경,EPB에 전화를 건 테러집단은 추가적인 폭탄테러를 예고하였다. 공포에 휩싸인 시민들은 대피소로 몰려들기 시작하였고 대피소인근 교통은 완전히 마비되었다. 한편 중앙역을 수색하던 네이션군 병모 하사는 이상한 무리를 목격,본부에 보고후 추적하였으니 놓쳤고 그의 뒤에서 이스트폴리스 중앙역이 폭발,도시를 빠져가려던 시민 약 80여명이 사망하였고 1000여명의 시민이 부상을 입었다.

주회의사당 돔 폭탄테러사건[편집 | 원본 편집]

주 의회의원의.대피가 완료된 17시 30분경,갑작스럽게 주회의사당의 주회의장으로 추정되는곳에서 폭발이 일어나 주회의사당 돔이 완전히 파손되고,경비 두명이 사망하였다. 이때의 사건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현재까지도 주의회의사당 돔은 유리로만 매꾸어져있는 상태이다

결말[편집 | 원본 편집]

총4회의 폭탄테러,2회의 테러미수,1회의 인질극으로 통칭 '게르노프-강현 광역시 공포의 날'사건은 막을내렸다. 이스트폴리스 역사상 두번째로 특검이 소집되었으며계엄령은 3주후,네이션군이 반군거점을 폭격하여 소멸시틴후 풀렸다. 시민과 군경등 121명이 사망하였으며 수천의 가망자를 발생시켰다. 또한 주 의회는 만장일치로 주방위군에대한 예산 인상안을 긴급통과시켰으며 네이션 연합군 3개사단을 항시배치하는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게르노프-강현특별시 해안에 대규모 기지가 설치되었으며 모든 시민의 뇌리속에 '공포의 날'이란 이름으로 남았다. 또한 EPIL이라는 이름의 이스트폴리스 독립전선이 처음으로 세상에 들어났으며 이스트폴리스 주 정부는 이들과는 어떠한 타협도 하지않겠다고 선포하였다.

게르이히 주지사 인질극 사건[편집 | 원본 편집]

12대 주지사 게르이히 '블라디미르' 안톤 이 출근도중 괴한에의해 피랍,강현광장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말한다.

정치체제[편집 | 원본 편집]

양당제 민주주의를 체택하였으며 '슬라브'당과 '한'당이 있다. 주지사는 5년마다 새로 뽑으며 각당에서 번갈아가며 출마한다. 그러나 전체주의성향,기타 반사회적 성향의 후보는 입후보하지 못하게하여 건전하고 투명한 정치를 유도케한다. 주 의회는 총 190명으로 이루어져있으며,인구 1000명 이상의 기초자치단체는 주 의회에 의원을 선출하여 보낼수있다.

선거[편집 | 원본 편집]

주지사 선거는 5년마다 열리며, 해당 순번의 당이 후보 3명을 추천하면 그 3명으로 주민투표에 부쳐 최종적으로 선발한다. 전체주민의 55%가동의하면 당선되며,전체 주민의 75%가 동의하면 탄핵된다.

경제[편집 | 원본 편집]

이스트폴리스 토종기업인 AIKA그룹이 상당부분을 점거하고있으나 외부 기업의 유입으로 점점 입지가 줄어들고있다. 전체적으로 과학기술을 숭상하는 분위기가 있어 중소기업의 대부분이 과학기술 연구및 공학연구에 몰려있으며,그런 기업을 수용키위해 수도 게르노프-강현 광역시에 '과학중점지구'를 설치하여 운영중이다. 그러나 주 정부에서 중심적으로미는 과학기술과는 동떨어진 자원 분야가 주의 주수입원이다. 주(state)유화 된EP OIL사는 현재 네이션 연합국내에서의 가장 큰 석유 시추및 정제및 유통업체로써 입지를 다지고있다.

AIKA그룹[편집 | 원본 편집]

이스트폴리스 최대의 민간기업. 약 30여개의 개열사를 가지고있는 재벌이다.

AIKA 투자증권[편집 | 원본 편집]

유일한 비상장회사이며 모든회사의 대지주이다. 지분 보유율은 EP OIL 29% EP ORE 11% AIKA 항공우주 99% AIKA 중공업 50.1% AIKA 모터스 49.9% 외 42개사의 주주이다.

AIKA 항공우주사[편집 | 원본 편집]

AIKA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 이스트폴리스 스베들라냐 우주센터의 건설비 85%를 지원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으며,세계유수의 항공우주기업으로 발돋움하고있다.

EP그룹[편집 | 원본 편집]

주 정부의 새로운 자금줄 마련요구로 인해 생겨난 신생그룹,이스트폴리스 내의 모든 공공시설의 건설및관리,대중교통의 경영및 확장을 도맡아 하고있다. 현재 회장은 전 이스트폴리스 주 의회의장인 김석금(金石金)씨이다.

계열사[편집 | 원본 편집]

  • EP OIL

이스트폴리스내 모든 원유와 가공유에대한 생산,가공,유통,판매를 전담한다

  • EP ORE

이스트폴리스내 모든 광석류에대한 생산과 가공을 담당한다

  • EP TRANS

이스트폴리스내 대중교통을 관장하는 기업

    • EP RAIL

주내의 모든 철도를 건설및 운영한다.

    • EP BUS

주내의 모든 시외버스를 운영한다.

  • EP AIR

주립 항공사.

행정구역[편집 | 원본 편집]

게르노프-비르누이섬(이스트폴리스 본섬)[편집 | 원본 편집]

게르노프-베르누이섬은 5개군과 2개시가 자리하고있는 이스트폴리스의 가장큰 섬이다.

게르노프-강현 광역시[편집 | 원본 편집]

이스트폴리스 자치주의 주도이자 가장 큰도시로 인구 약 72000여명의 이스트폴리스 기준으론 적지않은 인구를 자랑한다. 자원위주의 경재구조를 탈피하기위해 과학투자에 많은 힘을 기울이고있는 이스트폴리스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곳중 하나로 이스트폴리스의 단 두군데뿐인 외국기업 지사설립 허용지역이다.

  • 국제업무지구
  • 과학중점연구지구
  • 주정부삼권복합지구

그외 시군[편집 | 원본 편집]

궁의군[편집 | 원본 편집]

이스트폴리스 유일의 계획된 군급 도시이며,복합의료지구로서 주립 의료중앙센터가 존재한다.

보르쿠타군[편집 | 원본 편집]

이스트폴리스 최대의 교도소,보르쿠타 주립 5급 교도소가 존재한다. 유명 제소자로는 '공포의 날'의 주요 공모자인 게르이히 베데치냐, 42명을 총격으로 사망하게한 데그라챠프 폴리치냐등이 있다.

서포군[편집 | 원본 편집]

이스트폴리스의 서남부에 위치한 작은 항구마을이다.

스볘들랴냐 그라드군[편집 | 원본 편집]

항공우주의 도시.주립 스볘들랴냐 우주센터와 이스트폴리스 유일의 국제공항인 베르누이 국제공항이 존재하며,AIKA 항공우주사의 사옥이 존재한다.

스탈리나 그라드군[편집 | 원본 편집]

이스트폴리스 최대의 제철소인 EPOIL제 1제철소가 존재하며 여러군데의 철광산이 존재한다.

이연군[편집 | 원본 편집]
남천포시[편집 | 원본 편집]

이스트폴리스의 몇안되는 '시'급 도시이다.

특수 행정구역[편집 | 원본 편집]

국제무역업무지구[편집 | 원본 편집]

게르노프-강현 광역시병철시 이두군데에만 존재하며,이스트폴리스내에선 이두군데 에서만 외국 기업의 지사설립이 허용되어있다.

진출기업 명단[편집 | 원본 편집]
이스트폴리스[편집 | 원본 편집]

AIKA산하 15개사 EP그룹산하 8개사

진선[편집 | 원본 편집]
포비에르[편집 | 원본 편집]
  • AVA사(보험회사)
한서주[편집 | 원본 편집]

EV그룹 ev e&c

복합의료지구[편집 | 원본 편집]

궁의군에만 존재하며,이스트폴리스내의 대다수의 의료관련 기업과 궁의 종합병원, 베르누이 중증외상 전문 센터등이 존재한다.

방위[편집 | 원본 편집]

모병제와 징병제가 혼합된 구조를 채택하고있다. 22세이상의 건강한 모든 남성은 일차적으로 체력검사의 대상이되며, 통과한이들에겐 두가지 선택지가 주워진다. 반반의확률로 36개월간 군복무를 할것인가 입대조차 하지않을것인가 모병에 지원하여 24개월간 복무할것인가 중 한가지를 택하지만,일반적으론 자원입대를 택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주민수의 약1%인 19000여명이 방위에 종사중이다.

주방위대 육군[편집 | 원본 편집]

병력수의 가장 큰 비율(약 60%)를 차지한다. 특징으로는,모든 보병이 차량화/기계화되어있으며 기갑부대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있다. 운용장비

  • T-99
  • LAV
  • HMWVV
  • 2.5톤(통칭 두돈반트럭)

주방위대 공군[편집 | 원본 편집]

주방위대 해군[편집 | 원본 편집]

네이션 연합국군[편집 | 원본 편집]

약 1500여명이 수도 게르노프-강현 광역시에 치안유지및 긴급지원등을 목적으로 주둔중이다. 전 병력이 벤츠 스프린터차량으로 이동하며,이를 도입하기위해 상당한량의 재화가 필요하였다.

인물[편집 | 원본 편집]

강현 제독[편집 | 원본 편집]

이스트폴리스의 현대화에 큰이바지를 한 인물. 정복을 위해왔으나 난파당하여 보스토폴 시민들에게 항복한뒤,이스트폴리스 현대화에 큰공을 새웠으며,27건의 쿠데타시도를 저지하였고 3회의 납치,2회의 인질극,184차례의 살해협박을 받았다.

어록[편집 | 원본 편집]

  • "죄송합니다. 시민여러분. 본국이 여러분에게 죽을죄를.지었습니다. 그죄를 한번만 사하여주신다면 우리함대는 충실한 보스토폴 시민으로서 살아갈것입니다. 다시한번 죄송합니다"-1937년 11월 25일,항복하며-
  • "감사합니다 시민여러분. 여러분이 믿어주신 덕분에 이곳까지 올수 있었습니다."-1945년 3월 1일,국회의장으로 임명된것을 감사해하며-
  • "시민여러분.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1948년 7월 3일 반군에 의한 정부청사의 함락을 발표하며-
  • "국회의원여러분,여러분은 지금 뭘할수 있습니까? 저에게 허가와 소총만 주십쇼. 당장 저 역도의 윗대가리의 머리를 날려버리겠습니다."

-1948년 7월 3일,반란 대책 긴급회의에서의 연설-

  • "제 불찰입니다. 제 함대원이였던 자가 이런 악행을 저질렀으니 다 제불찰입니다."

-1950년,국회에서

  • "당장 저에게 국방장관의 자리를 세시간만이라도 주십쇼. 모조리 때려잡고 오겠습니다."

-1951년 8월,국회에서 반란군의 진압을 요청하며-

  • "좌표값 다불렀다. 풍향 북북서 12m/s..쏴.개미한마리도.남김없이."

1951년 8월 17일,박현도에대한 포격을 유도하며

  • "다때려잡았습니다."

-1951년 8월 19일 국회에서-